영화 러브레터 (Love Letter,1995) 감상

영화 러브레터 (Love Letter,1995) 리뷰

성공적인 영화의 첫 요소로 영화의 '첫장면'을 들 수 있다.

영화 러브레터는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영화의 첫장면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여자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는 2년 전 약혼자인

 '후지이 이츠키'를 사고로 잃는다. 

지금 그녀가 누워있는 곳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 날 눈밭 한가운데다. 

영화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녀가 눈밭을 내려가는 장면을 비춰주고,

여기서 흐르는 음악이 영화 러브레터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야기해준다. 잔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가 조용히 형성된다. 

스토리를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여주인공인 와타나베 히로코는

약혼자 집에 가서 그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뜻하지 않은 주소를

보게 된다. 바로 현재는 없지만 과거에는 존재했던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전 주소.

아직도 이츠키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히로코는

그리운 마음에 그 주소를 몰래 적어 잘 지내냐는 안부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답장이 없는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와버리고야 말았다.

바로 '후지이 이츠키'라는 자신의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와

동명이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다.

와타나베 히로코가 편지를 보내고, 그녀에게 답장을

보낸 진짜 '후지이 이츠키'는 사실 약혼자의 중학교 때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다. 영화 러브레터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사실상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다. 

두 명의 후지이 이츠키. 그들은 이름과 성이 모두 같은 동명 이인이며,

심지어 중학교 삼년 내내 같은 반에 배정된 '친구'이다.  

영화 러브레터가 애정신이 거의 전무함에도 불구,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최고의 멜로영화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아마 '첫사랑'의 감성을 최대한 디테일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철없던 시절,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두 소녀와 소년은 그렇게 고백할 용기도없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

이츠키에게 관심이 있는 여자아이를 이츠키에게

질질 끌고가다시피 데려간 장면이나,

뒤바뀐 시험지의 정답을 천천히 맞춰보던 장면이나,

위 사진처럼 되도않는 유치한 장난을 치는 장면이 그렇다. 

후지이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차 자신의

약혼자의 '첫사랑'을 파악하던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는,

전날 사고 당시 약혼자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그가 죽어가면서까지도 '첫사랑'을 떠올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 그의 친구들이 말한 노래가 '푸른 산호초'라는

곡인데 그 노래의 뜻을 보면 서쪽에 있는 자신의 사랑을

그리는 가사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잊지못할 사랑이란, 중학교 시절

자신과 같은 이름의 '후지이 이츠키'다. 

영화 러브레터의 가장 명장명인 오겡기데스까의 탄생은,

약혼녀인 히로코가 약혼자에게 마지막 안부인사를

전하며, 이제 그만 그를 보내준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물론 현시점에 와서 약혼녀가 너무 안타깝고,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첫사랑을 그리는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가

너무하다는 평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첫사랑 후지이 이츠키에게 건넨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어본다면 그러한 생각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이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 러브레터를 제작했다는

설또한 들려오고있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고

영화 러브레터를 감상한다면 감독의 의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이 장면은, 후지이 이츠키가 장난으로 적어놓았던 독서카드에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것을 뒤늦게 깨닫는 장면이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장면, 사실 이 장면에는 숨겨진 것이 있다.

'차마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하겠습니다.'

라는 뜻이,

'차마 쑥스러워서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하겠습니다.'

의 오역인 것이다.

실제 외국 영화를 보다오면 오역이 생기길 마련인데, 이건 오역이

오히려 더 좋은 반향을 일으킨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가슴이 아파서, 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고

영화 러브레터의 여운을 더 진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사람들의 평이 그렇다.

로맨스영화지만 단순히 로맨스영화로 치부하기엔 아쉬운 '영화 러브레터'

하얀 눈이 흩날리는 겨울에 본다면 더없이 좋을 영화이다.